핵심 한눈에

918년 음력 6월, 궁예의 신하였던 왕건이 태봉의 도읍 철원의 포정전에서 즉위하고 국호를 고려, 연호를 천수로 정했다. 송악으로 도읍을 옮긴 것은 이듬해이고 후삼국 통일은 936년의 일이므로, 즉위·천도·통일을 서로 다른 기점으로 읽는다.[1][2]

날짜 읽기

918년 음력 6월 15일(병진) · 철원 포정전 즉위[1][2] · 원문 역법을 유지했습니다. 양력으로 환산하지 않았습니다. · 지역 연결: 철원 (즉위 장소 · 태봉의 도읍)

01

송악의 호족이 궁예의 장수가 되기까지

왕건은 877년 송악의 해상 세력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896년 아버지 왕융과 함께 궁예에게 귀부한 그는 군대를 이끌고 경기와 충청의 여러 고을을 평정했고, 903년에는 수군으로 후백제의 배후인 금성군을 차지했다. 913년에는 시중에 올랐다. 그가 섬긴 궁예는 901년 왕을 칭한 뒤 904년 마진, 911년 태봉으로 나라 이름을 바꾸었다. 철원에 도읍을 둔 궁예는 스스로 미륵불이라 일컬으며 신하들을 억누르는 전제 정치로 기울었다. 새 왕조를 연 사람이 처음에는 자신이 무너뜨릴 나라를 키운 장수였다는 사실이 이 사건의 출발점이다.[2][3][4]

02

6월 병진일, 포정전의 즉위

궁예의 통치에 대한 불만이 쌓이자 홍유·배현경·신숭겸·복지겸 등이 왕건을 새 임금으로 받들었고, 궁예는 왕위에서 쫓겨났다. 『고려사』 세가는 원년 6월 병진일에 왕건이 포정전에서 즉위해 나라 이름을 고려, 연호를 천수라 했다고 기록한다. 국사편찬위원회 고려시대 사료 DB는 이날을 음력 6월 15일로 정리한다. 즉위가 이루어진 곳은 왕건의 고향이 아니라 태봉의 도읍 철원이었다. 즉위 초의 왕실은 환선길·이흔암처럼 왕권에 도전하는 세력을 상대해야 했고, 호족을 끌어안는 일도 시급했다. 도읍을 송악으로 옮긴 것은 919년 1월이다.[1][2]

03

건국에서 통일까지 18년

918년의 고려는 후삼국 가운데 한 나라였을 뿐이다. 태조는 신라와 가까이 지내는 한편, 후백제와는 싸움과 화친을 번갈아 택했다. 927년 공산 전투에서는 견훤의 군대에 포위되어 겨우 몸만 빠져나올 만큼 크게 졌지만, 930년 고창 전투에서 후백제 주력을 무너뜨리며 형세를 뒤집었다. 935년에는 왕위에서 밀려난 견훤을 맞아들였고 같은 해 신라왕의 항복을 받았다. 이듬해 일리천에서 후백제군을 멸하면서 통일이 완성되었다. 918년을 건국, 936년을 통일로 나누어 두면 고려가 세워질 때부터 후삼국 전체를 다스린 것처럼 읽는 착오를 피할 수 있다.[2][4]

04

고려라는 이름과 승자의 기록

고려라는 나라 이름을 처음 내건 사람은 왕건이 아니었다. 『삼국유사』 왕력은 궁예가 901년 나라 이름을 고려라 칭했다고 전하며, 연구자들은 대체로 이를 후고구려의 건국으로 이해한다. 두 나라 모두 고구려를 잇는다는 뜻을 이름에 담은 셈이다. 궁예 말기의 폭정을 전하는 이야기도 그대로 받아들이기 전에 출처를 따져야 한다. [학설] 우리역사넷은 이런 서술이 고려 건국 뒤 왕건의 입장에서 쓰였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짚고, 왕건이 추대를 받았는지 스스로 세력을 이끌고 즉위했는지도 열어 둔다. 두 해석 모두 왕건을 따르는 독자 세력이 궁예를 몰아냈다는 점에서는 같다.[3][4]

함께 읽는 말

이 문서의 뜻풀이 · 위 본문과 출처에 근거한 편집 설명

추대
여러 사람이 받들어 임금이나 지도자로 세우는 일.[1]
천수
태조가 즉위하며 정한 연호.[1]
귀부
다른 세력에 스스로 들어가 복속하는 일.[1]

궁금한 점

고려는 918년에 세워졌나요, 936년에 세워졌나요?

왕건의 즉위와 국호 제정은 918년이다. 936년은 후백제를 멸해 후삼국 통일을 이룬 해다.[1][2]

왕건은 개성에서 즉위했나요?

즉위 장소는 태봉의 도읍 철원의 포정전이었다. 고향 송악, 곧 지금의 개성으로 도읍을 옮긴 것은 919년 1월이다.[1][2]

후고구려와 고려는 같은 나라인가요?

다른 정권이다. 궁예가 901년 세운 나라는 마진·태봉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918년 왕건의 즉위로 끝났다. 후고구려는 연구자들이 이 나라의 건국을 가리킬 때 쓰는 이름이다.[3]

즉위일 6월 15일은 양력인가요?

음력이다. 『고려사』의 6월 병진일을 사료 DB가 음력 15일로 정리한 것이며, 이 사이트는 이를 양력 기념일로 바꾸지 않는다.[1]

TRACE THE RECORD

출처와 더 읽기

  1. 고려사 세가 권1, 태조 원년 6월 — 태조가 즉위해 국호를 고려라 하다국사편찬위원회 고려시대 사료 DB · 확인 2026-10-16

    원년 6월 병진일(DB 정리 음력 6월 15일) 포정전 즉위, 국호 고려·연호 천수

  2. 태조(고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 확인 2026-10-16

    877년 송악 출생, 896년 궁예 휘하, 903년 금성군 공략, 913년 시중, 918년 6월 추대·철원 포정전 즉위, 919년 1월 개성 천도, 927 공산·930 고창·936 일리천

  3. 태봉,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 확인 2026-10-16

    901년 궁예 칭왕과 『삼국유사』 왕력의 고려 칭호, 904년 마진·911년 태봉, 철원 도읍, 918년 6월 몰락

  4. 한국사 연대기 — 태조 왕건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 확인 2026-10-16

    896년 송악 귀부, 궁예 폭정 서술이 고려 측 입장에서 작성되었다는 유의점, 추대와 주도의 해석 문제, 918년 6월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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