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한눈에
1896년 4월 7일 독립신문 창간호가 나왔다. 국문과 영문으로 시사와 생활 정보를 전한 민간 신문으로, 창간에는 정부 예산의 지원도 있었다.[1]
1896년 4월 7일[1]
한 신문 안의 두 언어
창간 당시 독립신문은 모두 네 면으로 이루어졌다. 앞의 세 면은 국문, 마지막 면은 영문이었다. 국문 지면은 한문 독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도 소식을 전할 수 있는 통로였고, 영문 지면은 다른 언어권 독자에게 조선의 소식을 전하는 창구였다. 이처럼 어떤 문자와 언어를 택했는지를 살피면 신문이 만나려 한 독자층을 지면의 형식에서 읽을 수 있다.[1]
논설 옆에 놓인 생활 정보
지면에는 논설과 관보, 국내외 소식만 실린 것이 아니다. 물가와 우체 시간표, 제물포 항구의 배 출입 시간표, 광고도 함께 들어갔다. 신문은 정치적 의견을 펼치는 공간인 동시에 일상의 움직임을 돕는 정보 묶음이었다. 서재필이 사장 겸 주필을 맡고 주시경이 조필로서 국문판의 편집과 제작을 담당했다는 사실은 한 사람의 발언뿐 아니라 여러 역할이 모여 지면을 만들었음을 보여 준다.[1]
창간의 날짜, 변화의 과정
독립신문은 처음부터 매일 발행된 신문은 아니었다. 창간 때에는 주 세 차례 발행했고 이후 발행 방식과 지면 구성이 달라졌다. 1897년에는 영문판이 별도 신문으로 분리되었으며 1899년 12월 4일자까지 발행되었다. 창간일 하나로 신문의 전체 성격을 고정하기보다 시기에 따라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살피는 편이 정확하다. 훈민정음 문서와 함께 읽으면 문자와 매체라는 서로 다른 층위에서 읽기의 변화를 비교할 수 있다.[1]
함께 읽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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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점
독립신문은 처음부터 일간지였나요?
창간 때는 주 세 차례 발행했다. 1898년 7월 1일부터 일간지로 발전했다.[1]
창간호 전체가 한글이었나요?
국문 세 면과 영문 한 면으로 구성되었다.[1]
이야기 속 인물
서재필 →TRACE THE RECORD
출처와 더 읽기
- 독립신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 확인 2026-10-16
창간과 정부 예산 지원, 국문·영문 지면, 주시경의 역할, 1898-07-01 일간 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