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한눈에

676년 음력 11월, 신라 수군이 금강 어귀의 기벌포에서 당군을 거듭 물리치면서 670년부터 이어진 나당전쟁이 끝났다. 백제와 고구려를 함께 무너뜨린 동맹이 영토 문제로 갈라선 지 7년 만이었고, 신라는 백제의 옛 땅과 고구려의 남쪽 일부를 차지하게 되었다.[3][4]

날짜 읽기

676년 음력 11월 · 기벌포 전투(삼국사기)[3][4] · 원문 역법을 유지했습니다. 양력으로 환산하지 않았습니다.

01

대동강의 약속과 당의 직접 지배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에 맞서기 위해 648년 당과 군사 동맹을 맺었다. 우리역사넷은 이때 당 태종이 두 나라를 정벌한 뒤 평양 이남의 땅을 신라에 주기로 약속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660년 백제, 668년 고구려가 무너진 뒤 당은 백제의 옛 땅에 웅진도독부를, 고구려의 옛 땅에 안동도호부를 두어 직접 다스리려 했다. 당은 문무왕을 계림주대도독으로,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을 웅진도독으로 삼고 취리산 회맹을 주도해 한반도를 지배하려는 뜻을 드러냈다. 영토 문제만이 원인은 아니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연합 작전 과정에서 당이 신라의 군령권을 침해한 데 대한 신라 군부의 반발과, 요충지 비열홀을 둘러싼 갈등도 직접적인 원인으로 든다.[9][4]

02

오골성에서 임진강까지

670년 3월 신라의 설오유와 고구려 부흥군의 고연무가 각각 1만 명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오골성을 먼저 공격했다. 이어 신라는 백제의 옛 땅을 빠르게 차지해 나가, 671년 석성에서 당의 구원군을 꺾고 소부리주를 설치했다. 반격도 거셌다. 672년 8월 석문 전투에서 장수 여럿을 잃는 참패를 당한 신라는 당에 사죄하는 사신을 보내고 나라 곳곳에 성을 쌓았다. 『삼국사기』에 673년 한산주에 쌓았다고 나오는 주장성은 발굴 결과 오늘날 남한산성 자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전선은 673년 무렵 임진강까지 밀려 내려왔고, 675년 2월에는 유인궤가 칠중성을 깨뜨려 신라가 다시 사죄사를 보냈다.[4][9][8]

03

매소성 전역과 9월 29일

675년 9월, 설인귀의 함대가 한강 어귀의 천성을 공격했다가 신라군에 격퇴되었다. 『삼국사기』는 같은 달 29일 이근행이 군사 20만 명을 이끌고 매소성에 머물자 신라군이 공격해 달아나게 하고 전마 3만 380필과 그만큼의 병장기를 얻었다고 적는다. 이어 크고 작은 싸움 18번을 모두 이겼다는 기록도 남았다. 이 무렵 신라는 천성·칠중성·아달성·적목성 등에서 동시에 싸웠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이 전투들을 하나로 묶어 매소성 전역이라 부른다. [학설] 20만이라는 숫자는 과장이라는 견해가 많다. 백과사전 매소성 항목은 중국 측 사서를 참작해 4만 명으로 추정하고, 나당전쟁 항목은 최소 5만 명 이상이었다고 본다. [학설] 천성을 친 설인귀 함대도 매소성의 당군을 먹일 보급 함대였다는 견해와 전선을 한강으로 끌어내리려던 전투 함대였다는 견해로 나뉜다.[1][2][6][4][9]

04

기벌포의 스물두 번 싸움

676년 윤3월 토번이 당의 내지를 위협하자 당은 막혀 버린 한반도 전선보다 서쪽 변경에 힘을 쏟게 되었다. 같은 해 2월에는 안동도호부를 평양에서 요동으로 옮긴 상태였다. 그해 겨울 11월, 사찬 시득이 이끈 신라 수군이 소부리주 기벌포에서 설인귀의 당군과 맞섰다. 『삼국사기』는 처음 싸움에서 거듭 졌던 신라군이 다시 나아가 크고 작은 22번의 싸움에서 이기고 4천여 명을 베었다고 기록한다. 기벌포는 금강 하구,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 장항 일대로 본다. 이 싸움 뒤 서해에서 당군의 군사 활동은 더 확인되지 않으며, 당군은 한반도에서 물러났다. 우리역사넷은 이로써 나당전쟁이 신라의 승리로 끝났다고 정리한다.[4][5][3][9]

05

마지막 싸움의 성격과 통일의 범위

기벌포 전투가 어떤 싸움이었는지부터 해석이 엇갈린다. [학설] 백과사전의 삼국통일 항목은 다시 쳐들어온 설인귀의 상륙을 막아 낸 싸움으로 서술하지만, 나당전쟁 항목은 철수를 결정한 당군과 유민이 금강 어귀에 모였을 때 신라 수군이 공격한 전투로 본다. [기록 차이] 고대사료DB 역주는 『구당서』·『신당서』 설인귀전이 그를 674~676년 무렵 남쪽 상주에 유배된 것으로 적어, 국외 학계에서는 천성과 기벌포 전투를 671년의 일로 본다고 소개한다. 전쟁 기간도 백과사전 나당전쟁 항목과 우리역사넷은 7년으로, 삼국통일 항목은 5년에 걸친 싸움으로 표현한다. [학설] 결과의 평가도 하나가 아니다. 우리역사넷은 삼한일통의 위업으로 평가하고, 백과사전 삼국통일 항목은 요동을 잃고 북쪽에 발해가 들어서 고구려 영토 일부가 빠진 불완전한 통일이라는 한계를 함께 적는다.[7][4][3][9]

함께 읽는 말

이 문서의 뜻풀이 · 위 본문과 출처에 근거한 편집 설명

안동도호부
고구려 멸망 뒤 당이 평양에 두었던 통치 기구. 676년 요동으로 옮겼다.[1]
웅진도독부
백제 멸망 뒤 당이 백제의 옛 땅에 둔 통치 기구.[1]
전역
같은 전략 목적 아래 잇달아 벌어진 여러 전투를 하나로 묶어 부르는 말.[1]

궁금한 점

나당전쟁은 언제 끝났나요?

676년 음력 11월 기벌포 전투가 마지막 싸움이다. 670년 3월 오골성 공격에서 시작해 7년 동안 이어졌다.[3][4]

매소성 전투와 기벌포 전투 중 어느 쪽이 결정적이었나요?

백과사전 나당전쟁 항목은 675년의 매소성 전역을 결정적 전투로, 676년의 기벌포 전투를 마지막 전장으로 본다.[4]

신라의 삼국 통일은 668년인가요, 676년인가요?

668년은 고구려가 멸망한 해다. 백과사전 삼국통일 항목은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이 곧 통일은 아니었고, 당군을 몰아내야 실질적인 통일이 된다고 설명한다. 당군이 물러난 것은 676년이다.[7][9]

기벌포는 지금 어디인가요?

금강 하구로 보며, 고대사료DB 역주는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일대에 있던 포구로 설명한다. 위치에는 다른 견해도 있다.[3][5]

TRACE THE RECORD

출처와 더 읽기

  1. 삼국사기 권7 신라본기 문무왕 15년 9월 29일 — 이근행이 매소성에 진을 치자 공격하여 내몰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고대사료DB · 확인 2026-10-16

    이근행 20만 주둔, 신라군이 공격해 달아나게 하고 전마 30,380필·병장기 획득. DB 역주: 20만 과장설·4만설·10만 이상 추산, 매소성 위치 연천 대전리산성 비정과 양주 대모산성설

  2. 삼국사기 권7 신라본기 문무왕 15년 9월 — 당나라 군사와 열여덟 번 싸워 모두 이기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고대사료DB · 확인 2026-10-16

    크고 작은 18번 싸움 승리, 6,047명 참수·전마 200필. DB 역주: 매소성 전역(戰役) 개념

  3. 삼국사기 권7 신라본기 문무왕 16년 11월 — 시득이 기벌포에서 설인귀와 싸워 이기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고대사료DB · 확인 2026-10-16

    겨울 11월 사찬 시득의 수군이 소부리주 기벌포에서 설인귀와 싸워 처음 연패, 다시 22번 싸워 이기고 4천여 명 참수. DB 역주: 구당서·신당서 설인귀전의 상원 연간 유배 기록과 국외 학계의 671년설, 기벌포=서천 장항 일대

  4. 나당전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 확인 2026-10-16

    670년 3월 오골성 선제공격~676년, 영토 문제·군령권 침해·비열홀 갈등, 671 석성·소부리주, 672년 8월 석문 참패, 673 임진강선, 675년 2월 칠중성, 9월 천성·매소성 전역, 676년 윤3월 토번, 11월 기벌포를 당군 철수 과정으로 보는 견해

  5. 기벌포전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 확인 2026-10-16

    676년 11월, 위치 이설과 금강 하구설, 시득의 첫 패배와 22번 전투·4천여 명, 676년 2월 안동도호부 요동 이전, 철수 집결 중의 전투로 보는 견해, 서해 제해권

  6. 매소성전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 확인 2026-10-16

    매소성 위치는 현지 실증되지 않음, 『삼국사기』 20만과 중국 측 사서 참작 4만 추정, 설인귀 함대를 보급함대로 보는 견해, 전마 30,380필

  7. 삼국통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 확인 2026-10-16

    백제·고구려 멸망이 곧 통일은 아니며 당군 축출이 남은 과업, 670~676 전투 경과, 기벌포 상륙 저지 서술, 발해 건국과 요동 상실로 불완전한 통일이라는 평가, 5년에 걸친 싸움이라는 표현

  8. 남한산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 확인 2026-10-16

    673년(문무왕 13) 한산주 주장성 축성 기록과 발굴로 확인된 신라 성벽, 1624년 인조 대 개축, 2014년 세계유산 등재

  9. 한국사 연대기 — 신라·당 전쟁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 확인 2026-10-16

    648년 동맹과 평양 이남 약속, 계림주대도독·취리산회맹, 시작 시점 669년설, 설인귀 함대 보급·전투함대 두 견해, 매소성 20만 과장 견해, 676년 11월 기벌포로 종결, 삼한일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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